
정답목을 길게 단 미송리식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 토기입니다.
핵심 개념
청동기 시대의 유물과 무덤
제시문의 반달 돌칼, 민무늬 토기,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모두 청동기 시대를 가리키는 대표 지표입니다. 반달 돌칼은 벼 이삭을 자르는 수확 도구로 본격적인 벼농사의 확산을 보여 주고, 민무늬 토기는 신석기의 빗살무늬 토기를 대체한 청동기 시대의 대표 토기입니다. 또 고인돌과 돌널무덤은 계급이 발생하여 지배자가 등장했음을 알려 주는 무덤 양식입니다. 따라서 각 선지가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중 어느 시대의 특징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농경과 목축이 처음 시작된 것은 신석기 시대의 신석기 혁명입니다. 청동기 시대는 농경이 시작된 때가 아니라 벼농사 등으로 농경이 크게 발전한 시기이므로 이 선지는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②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 살면서 이동 생활을 한 것은 구석기 시대의 주거 형태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구릉지대에 지상 가옥에 가까운 움집을 짓고 취락을 이루어 정착 생활을 하였습니다.
③대전 용호동 유적에서 확인된 불 땐 자리(화덕 자리)는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입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이 아니므로 '이 시기'의 사실로 볼 수 없습니다.
④목이 길게 올라온 미송리식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 토기로, 비파형 동검·탁자식 고인돌과 함께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알려 주는 유물로 꼽힙니다. 제시문의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므로 정답입니다.

정답모용황의 공격을 받은 것은 (가) 이전인 고국원왕 때(342)의 일이므로 시기가 맞지 않습니다.
핵심 개념
소수림왕과 장수왕 사이 — 광개토대왕의 정복 활동
(가)는 전진에서 불교 수용, 태학 설립, 율령 반포를 언급하므로 4세기 후반 소수림왕(371~384)의 체제 정비입니다. (나)는 평양 천도(427)와 백제 한성 함락 및 개로왕 전사(475)이므로 장수왕 대의 남진 정책입니다. 따라서 (가)와 (나) 사이에 해당하는 시기는 고국양왕을 거쳐 광개토대왕(391~412)이 활약한 때입니다. 광개토대왕의 요동 진출, 만주 정복, 신라 구원 등이 이 시기의 대표 사실이며, 그보다 앞선 고국원왕 대의 사건은 (가) 이전이 되므로 시기 구분이 관건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전연의 모용황이 고구려를 침입해 환도성을 함락한 것은 342년 고국원왕 때의 일입니다. 소수림왕의 체제 정비(가)보다 앞선 사건이므로 (가)와 (나) 사이에 해당하지 않아 정답입니다.
②광개토대왕은 후연을 공격하여 요동 지역을 차지하고 만주 일대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391년 이후의 일이므로 (가)와 (나) 사이의 사실이 맞습니다.
③광개토대왕은 북쪽으로 숙신(여진의 전신)을 정복하고 동부여를 복속시켜 만주 지역의 지배권을 확립하였습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도 기록된 사실로 (가)와 (나) 사이에 해당합니다.
④광개토대왕은 400년에 신라 내물왕의 요청을 받아 5만 군대를 보내 낙동강 유역까지 침입한 왜병을 격퇴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금관가야가 쇠퇴하였으며 역시 (가)와 (나) 사이의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