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반달형 돌칼을 사용한 것이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생활 모습입니다.
핵심 개념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
제시문의 고인돌·돌널무덤·돌무지무덤과 적갈색 민무늬 토기는 모두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과 유물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벼농사를 포함한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반달 돌칼·홈자귀 같은 간석기 농기구가 널리 쓰였고, 잉여 생산물이 생기면서 계급이 발생해 지배자의 무덤인 고인돌이 만들어졌습니다. 주거는 동굴을 벗어나 배산임수의 구릉지에 마을을 이루었고, 집자리는 점차 직사각형으로 바뀌며 화덕이 한쪽 벽으로 옮겨졌습니다. 신석기(빗살무늬 토기·가락바퀴)와 구석기(동굴·막집)의 특징을 구분해 두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에서 이동 생활을 한 것은 구석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구릉지에 움집을 짓고 정착 마을을 이루었으므로 틀렸습니다.
②가락바퀴(방추차)와 뼈바늘로 실을 뽑아 옷감을 짜기 '시작'한 것은 신석기 시대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도 직조는 이어지지만 '시작'한 시기가 아니므로 옳지 않습니다.
③가까운 사람을 함께 묻는 순장 풍습은 부여·고구려·가야·신라 등 초기 국가 및 삼국 시대의 기록에 나타나는 풍습으로, 청동기 시대의 일반적 생활 모습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④반달 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훑어 자르던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추수용 간석기입니다. 농경이 본격화된 청동기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정확히 들어맞습니다.
⑤빗살무늬 토기는 신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입니다. 제시문에서 이 시대의 토기를 민무늬 토기라고 밝히고 있으므로 서로 모순되어 틀렸습니다.

정답부여에는 호민이라는 지배층과 하호라는 피지배층이 존재했습니다.
핵심 개념
부여의 법과 사회
제시문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법률입니다. 살인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는 연좌제, 도둑질하면 12배로 갚게 하는 1책 12법, 간음한 자와 투기한 부인을 사형에 처하는 조항이 부여 법의 핵심입니다. 부여는 왕 아래 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여러 가(加)가 사출도를 다스린 연맹 왕국이었고, 12월에 영고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으며 순장과 형사취수제 풍습이 있었습니다. 사회 구성으로는 부유한 지배층인 호민과 그 아래 하호, 노비가 존재했다는 점이 자주 출제됩니다.
선지별 해설
①천군이 소도에서 제사를 주관한 것은 삼한의 특징입니다. 삼한은 제정 분리 사회였으며, 부여의 제천 행사는 12월의 영고였으므로 옳지 않습니다.
②한 무제의 침략으로 멸망한 나라는 고조선(기원전 108년)입니다. 부여는 494년 고구려 문자왕에게 항복하며 병합되었으므로 틀렸습니다.
③호랑이를 신으로 여겨 제사를 지낸 것은 동예의 풍습입니다. 동예는 이 밖에도 무천·책화·족외혼으로 자주 출제되므로 부여와 구분해야 합니다.
④국동대혈은 고구려에서 10월 동맹 때 왕과 신하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던 곳입니다. 부여가 아니라 고구려의 제천 행사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⑤『삼국지』 동이전은 부여 사회에 부유한 지배층인 호민과 그 아래 하호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시문의 나라인 부여에 대한 옳은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