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구석기인은 사냥과 물고기잡이, 채집을 통해 식량을 얻으며 이동 생활을 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 동관진 유적과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
1935년 함경북도 종성군 동관진(현 강안리)에서 발견된 유적은 한반도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 시대 유적입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구석기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선에는 구석기가 없다고 주장했던 일본 학계의 정체성론을 흔드는 발견이었습니다. 구석기인은 뗀석기와 뼈로 만든 골각기를 사용하였고, 농경을 알지 못한 채 사냥과 물고기잡이·채집으로 식량을 얻으며 동굴이나 막집에서 이동 생활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항은 농경·정착 생활을 전제로 한 선지를 걸러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반달 돌칼은 곡식의 이삭을 자르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간석기 농기구입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농경 자체가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벼 수확은 있을 수 없습니다.
②갈판과 갈돌은 신석기 시대에 도토리 등 열매를 가는 데 쓰인 도구입니다. 게다가 옥수수는 신대륙 원산 작물로 조선 후기에야 전래되었으므로 이중으로 틀린 설명입니다.
③구석기 시대에는 사냥과 어로, 식물 채집으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주먹도끼·찍개 같은 뗀석기와 동관진에서 나온 골각기가 이러한 사냥·어로 생활을 보여 주는 유물입니다.
④영혼 숭배와 조상 숭배 관념이 나타나고 토기(흙 그릇)를 이용한 매장 풍습이 확인되는 것은 신석기 시대 이후입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토기가 아직 제작되지 않았습니다.

정답최충헌은 명종에게 봉사십조를 올려 사회 개혁안을 제시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 만적의 난과 최충헌의 집권
제시문은 신종 원년(1198)에 개경에서 사노비 만적이 일으키려 한 신분 해방 운동입니다. 만적은 "공경장상이라도 우리가 모두 할 수 있다"라며 천적(賤籍)을 불태워 천민을 없애자고 모의하였는데, 이때 그가 먼저 제거하려 한 대상이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충헌입니다. 최충헌은 1196년 이의민을 제거하고 집권하여 최씨 무신 정권을 열었고, 명종에게 봉사십조를 올려 시정 개혁을 건의했으며 교정도감을 설치해 권력 기반을 다졌습니다. 따라서 (가) 인물은 최충헌이며, 그의 아들 최우(최이)의 업적과 구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정방을 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한 인물은 최충헌의 아들 최우(최이)입니다. 최충헌은 교정도감을 두어 최고 집정 기구로 삼았습니다.
②야별초 역시 최우가 치안 유지를 위해 설치한 사병 조직으로, 뒤에 좌·우별초와 신의군을 합쳐 삼별초가 되었습니다. 최충헌의 사병 조직은 도방입니다.
③이의방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은 인물은 정중부입니다. 최충헌은 이의민을 제거하고 집권하였으므로 대상 인물이 다릅니다.
④최충헌은 집권 직후 명종에게 봉사십조를 올려 토지 겸병 금지, 조세 수취 시정, 승려의 정치 관여 금지 등 사회 개혁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실제 개혁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