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로, 고래잡이 장면 등이 새겨진 선사시대 바위그림입니다.
핵심 개념
🔑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선사시대 고래잡이 그림
제시문의 '고래 잡는 사람, 작살이 꽂힌 고래, 호랑이, 사슴' 묘사는 울산 울주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의 대표적 특징입니다. 태화강 지류인 대곡천 절벽 바위에 300점 가까운 그림이 새겨져 있으며, 신석기 말~청동기시대에 걸쳐 제작된 것으로 봅니다. 사냥과 고래잡이의 성공을 비는 주술적 신앙과 당시 사람들의 생업을 보여 주는 자료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바위그림 문제는 '고래·사냥 그림=반구대', '기하학적 무늬·태양 숭배=고령 장기리(양전동)'로 짝지어 외우면 됩니다.
선지별 해설
①고령 장기리 암각화(양전동 알터 암각화)는 동심원·십자형 등 기하학적 무늬가 주를 이루어 태양 숭배 등 농경 관련 신앙을 보여 주며, 고래나 사냥 장면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②황해도 안악 3호분 행렬도는 4세기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벽화로, 대규모 행렬을 통해 무덤 주인의 권위를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아닙니다.
③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는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말다래(장니)에 그린 그림으로, 삼국시대 신라의 회화 자료입니다. 제시문의 암각화 설명과는 무관합니다.
④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정답입니다. 작살 맞은 고래, 배를 탄 사냥꾼, 호랑이·사슴 등 사냥 대상 동물이 새겨져 있어 선사시대 생활·신앙·예술을 보여 주는 국보입니다.

정답비변사로,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최고 기구가 되었습니다.
핵심 개념
🔑 비변사 — 임시 군사기구에서 최고 정무기구로
비변사는 중종 때 삼포왜란(1510)을 계기로 여진족과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설치된 임시 회의 기구에서 출발했습니다. 명종 때 을묘왜변(1555)을 거치며 상설 기구가 되었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전·현직 정승과 각 조 판서, 5군영 대장 등 주요 관원이 참여하는 최고 회의체로 확대되어 군사뿐 아니라 외교·재정·인사 등 국정 전반을 처리하였습니다. 그 결과 의정부와 6조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졌고, 세도정치기에는 세도 가문의 권력 기반이 되었습니다. 1865년 흥선대원군이 비변사를 사실상 폐지하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시켰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비변사가 정답입니다. 중종 때 변방 방어를 위한 임시 기구로 설치되어 을묘왜변 이후 상설화되었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정 전반을 다루는 최고 기구로 확대되어 의정부·6조의 기능을 축소시켰습니다.
②삼군부는 조선 초기 군령을 담당하던 기구로, 1865년 흥선대원군이 비변사를 혁파하면서 군사 기능을 맡도록 부활시킨 기구입니다. 임진왜란기 국정 총괄 기구가 아닙니다.
③상서성은 고려의 2성 6부 체제에서 실무 집행을 담당하던 관청으로, 조선의 기구가 아닙니다.
④집사부는 신라 진덕여왕 때 설치되어 국가 기밀 사무를 관장한 관부로, 그 장관인 시중(중시)이 왕권을 뒷받침하였습니다. 시기가 전혀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