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비파형 동검이 사용된 시기로, 이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청동 무기입니다.
핵심 개념
청동기 시대의 대표 유물 — 미송리식 토기·팽이형 토기·붉은 간 토기
제시된 세 토기는 모두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입니다. 미송리식 토기는 평안북도 의주 미송리 동굴에서 출토된 밑이 납작하고 양쪽에 손잡이가 달린 토기로, 비파형 동검·탁자식 고인돌과 함께 고조선의 문화 범위를 알려주는 지표 유물입니다. 팽이형 토기는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분포한 청동기 시대 토기이고, 붉은 간 토기는 표면에 산화철을 발라 문질러 광택을 낸 토기로 주로 무덤의 껴묻거리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이 문항은 '청동기 시대의 특징'을 묻는 문제이며, 신석기·구석기·철기 시대의 요소가 섞인 선지를 걸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비파형 동검은 악기 비파를 닮은 형태의 청동 검으로,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중심으로 출토되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 유물입니다. 미송리식 토기·탁자식 고인돌과 함께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보여주는 지표 유물이므로 옳은 설명입니다.
②오수전은 중국 한 대의 화폐로, 명도전·반량전 등과 함께 철기 시대 유적에서 출토됩니다. 이는 당시 중국과의 교역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철기 시대의 증거이므로 청동기 시대 설명으로는 틀렸습니다.
③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출토된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입니다. 동아시아에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존재했음을 입증한 유물로, 청동기 시대와는 시기가 전혀 다릅니다.
④철이 많이 생산되어 낙랑과 왜에 수출한 것은 변한(이후 가야)에 대한 설명으로, 철기 시대에 해당합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 변한에서 철이 나 낙랑·왜가 모두 이를 가져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답제시문 자체가 진대법 시행 기사이므로, 「진대법」을 시행하였다는 설명이 옳습니다.
핵심 개념
고구려 고국천왕과 진대법(春貸秋納)
제시문은 『삼국사기』에 실린 고구려 고국천왕 16년(194) 기사입니다. 왕이 질양으로 사냥을 갔다가 길에서 우는 백성을 보고 자책한 뒤, 매년 봄 3월부터 가을 7월까지 관청의 곡식을 백성의 식구 수에 따라 차등 있게 빌려주었다가 10월에 갚게 하는 제도를 법으로 정했다는 내용으로, 곧 진대법입니다. 진대법은 국상 을파소의 건의로 시행된 우리 역사상 최초의 빈민 구제 제도로, 춘궁기 농민이 몰락해 귀족의 노비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 왕권을 강화하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고국천왕은 이 밖에 부족적 성격의 5부를 행정적 성격의 5부로 개편하고 왕위의 부자 상속을 확립한 왕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낙랑군을 축출한 왕은 미천왕(313)입니다. 미천왕은 서안평을 점령(311)하고 낙랑군·대방군을 몰아내 대동강 유역을 확보하였으므로, 고국천왕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②제시문의 '봄에 곡식을 빌려주고 10월에 상환하게 한 법규'가 바로 진대법입니다. 고국천왕이 을파소의 건의를 받아들여 시행한 빈민 구제책이므로 옳은 설명입니다.
③백제의 침입으로 전사한 고구려 왕은 고국원왕입니다. 371년 백제 근초고왕이 평양성을 공격했을 때 고국원왕이 전사하였으며, 고국천왕과는 다른 인물입니다.
④'영락'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한 왕은 광개토대왕입니다. 광개토대왕릉비에 영락 연호가 확인되며, 이는 고구려의 자주적 천하관을 보여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