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주먹도끼 등 뗀석기로 짐승을 사냥한 것은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입니다.
핵심 개념
구석기 시대의 유적과 생활
제시된 상원 검은모루 동굴과 연천 전곡리는 대표적인 구석기 유적입니다. 구석기인들은 동굴이나 강가의 막집에서 무리를 이루어 살며 이동 생활을 하였고, 돌을 깨뜨려 만든 뗀석기(주먹도끼, 찍개 등)와 뼈 연모를 사용해 사냥과 채집을 하였습니다. 뗀석기와 이동 생활이 핵심 특징이며, 간석기(신석기)나 토기 제작 이전 단계임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고인돌은 지배층의 무덤으로 청동기 시대에 조성되었습니다. 계급이 발생한 청동기 사회의 산물로 구석기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②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에 곡물을 저장·조리하기 위해 제작한 토기입니다. 정착과 농경이 시작된 신석기의 유물입니다.
③명도전은 중국 화폐로, 이를 이용한 교역은 철기 시대에 중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④주먹도끼는 대표적인 구석기 뗀석기로, 짐승을 사냥하고 도살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제시된 시대의 생활 모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정답(가) 관료전 지급, (나) 녹읍 폐지, (다) 국학 설치가 옳은 연결입니다.
핵심 개념
신문왕의 왕권 강화 정책
통일신라 신문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진골 귀족의 경제 기반을 약화하기 위해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였습니다. 관료전은 조세 수취권만 인정한 토지였고, 녹읍은 노동력까지 징발할 수 있어 귀족의 세력 기반이었으므로 이를 없앤 것입니다. 또한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해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리를 양성하였습니다. 관료전·녹읍·국학이 이 문제의 핵심 개념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신문왕은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하여 귀족을 견제했으며, 유학 교육 기관인 국학을 설치하였습니다. 세 항목이 모두 정확합니다.
②(가) 관료전, (나) 녹읍은 맞지만 (다) 태학이 틀립니다. 태학은 고구려 소수림왕이 세운 교육 기관이며, 신라의 유학 기관은 국학입니다.
③(가)와 (나)가 뒤바뀌었습니다. 신문왕은 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한 것이므로 (가)는 관료전, (나)는 녹읍이어야 합니다.
④(가)·(나)가 뒤바뀌었고 (다) 태학도 고구려 기관이라 틀립니다. 신라의 교육 기관은 국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