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신라 사신이 전진의 황제 부견을 알현해 내물마립간의 친서를 전달했으므로, 부견은 내물마립간이 보낸 사신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핵심 개념
신라 고분 속 사산조 페르시아 양식 유물의 유입 경로
이 글은 경주 고분에서 나온 사산조 페르시아 양식 유물(황남대총의 팔찌, 계림로 14호 고분의 보검)이 어떻게 신라에 들어왔는지를 설명합니다. 핵심은 4세기 후반 내물마립간이 고구려 소수림왕의 허락을 받아 고구려 영토를 거쳐 전진에 사신을 보냈고, 그 사신이 전진 황제 부견을 알현하고 친서를 전달했으며, 전진에 들어와 살던 사산조 페르시아 사람들에게서 보검과 팔찌를 사들여 왔다는 유통 경로입니다. 각 선지가 이 경로를 정확히 반영하는지 따져야 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글에 '신라 사신은 전진의 황제 부견을 알현해 내물마립간의 친서를 전달했다'고 나와 있으므로, 부견이 내물마립간이 보낸 사신을 만난 일이 있다는 진술은 맞습니다.
②터키석으로 장식된 팔찌가 나온 곳은 황남대총이고, 계림로 14호 고분에서는 손잡이에 석류석이 박힌 보검이 나왔습니다. 출토지를 뒤바꾼 진술입니다.
③글에서는 전진의 부견이 서역의 여러 나라를 정복하고 실크로드를 통해 사산조 페르시아와 교류했다고 했을 뿐, 사산조 페르시아가 전진과 함께 정복하거나 실크로드를 개척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④소수림왕은 신라 사신이 고구려 영토를 거쳐 전진에 가도록 허락했을 뿐입니다. 전진에 사신을 보내 보검을 구해 준 주체는 소수림왕이 아니라 신라 사신입니다.
⑤신라 사신이 전달한 친서는 전진의 황제 부견에게 전한 내물마립간의 친서이며, 사산조 페르시아에 친서를 보냈다는 내용은 글에 없습니다.

정답불내 집단이 속한 동예 지역은 낙랑군이 고구려에 정복되어 사라진 뒤 고구려 땅이 되었습니다.
핵심 개념
동예에 대한 지배권의 변천 과정
이 글은 함경도 일대에 살던 예족 집단인 동예가 고조선 복속에서 시작해 한의 임둔군·낙랑군 지배, 불내후·동부도위를 통한 간접 관리, 독립과 반란, 기원후 245년 낙랑군의 직접 지배, 그리고 낙랑군이 고구려에 정복되면서 고구려 땅이 되기까지의 지배권 변천을 다룹니다. 각 기구를 설치·폐지한 주체와 시점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불내는 동예 집단의 하나이고, 글 마지막에 낙랑군이 고구려에 의해 정복되어 사라지면서 동예가 있던 곳도 고구려 땅이 되었다고 했으므로, 불내가 있던 곳이 고구려 영토가 되었다는 진술은 부합합니다.
②낙랑군은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한 뒤 설치했고 불내후는 낙랑군이 임명한 직위입니다. 불내후가 낙랑군을 둔 것이 아니며, 불내후는 직접 지배가 아니라 분쟁 중재 역할만 했습니다.
③동부도위는 낙랑군이 불내후의 동향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했다가 기원후 30년에 폐지한 기구입니다. 고구려가 설치한 것이 아닙니다.
④임둔군은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한 뒤 동예가 있는 곳에 설치한 군현입니다. 고조선이 설치한 것이 아닙니다.
⑤무역 이권을 독점한 주체는 고조선이며, 한 무제는 그 고조선을 멸했습니다. 동예가 교역을 막고 이권을 독점했다거나 한 무제가 동예를 정복했다는 진술은 사실과 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