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불교의 국가적 공인은 지증왕이 아니라 법흥왕 때의 일입니다.
핵심 개념
신라 지증왕과 법흥왕의 업적 구분
이 문제는 6세기 초 신라 지증왕(500~514)의 업적을 다른 왕과 구분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지증왕은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왕호를 '왕'으로 칭하였으며,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울릉도)을 정벌하였습니다. 또한 우경(牛耕)을 보급해 농업 생산력을 높이고, 수도 경주에 시장인 동시(東市)를 설치하였습니다. 반면 불교 공인은 다음 대인 법흥왕이 이차돈의 순교(527)를 계기로 이룬 업적이라는 점을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지증왕은 512년 이사부를 보내 우산국(울릉도)을 복속시켰으므로 지증왕 대의 사실이 맞습니다.
②지증왕은 509년 수도 경주에 시장인 동시(東市)와 이를 관리하는 동시전을 두었으므로 맞는 설명입니다.
③불교를 국가 차원에서 공인한 것은 법흥왕으로, 527년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이루어졌습니다. 지증왕 때의 사실이 아니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④지증왕은 502년 순장을 금지하고 우경을 장려하는 등 농업을 권장하였으므로 맞는 설명입니다.

정답장보고는 6두품 출신 유학생이 아니라 미천한 신분 출신으로 당에서 군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청해진을 세운 장보고의 활동
이 문제는 9세기 통일신라의 해상 세력인 장보고의 활동을 정확히 아는지를 묻습니다. 장보고는 미천한 신분 출신으로 당나라에 건너가 군인(무령군 소장)으로 활약하다 귀국하여, 828년 흥덕왕의 허락을 받아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였습니다. 이를 근거지로 신라인을 약탈하던 해적을 소탕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동아시아 해상 교통과 무역을 장악하였습니다. 6두품 출신 유학생이라는 서술과는 구별해야 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장보고는 828년 지금의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여 해상 활동의 근거지로 삼았으므로 맞는 설명입니다.
②장보고는 청해진을 근거지로 신라인을 노예로 약탈하던 해적을 소탕하였으므로 맞는 설명입니다.
③장보고는 6두품 출신 유학생이 아니라 한미한 신분 출신으로, 당에서 무령군 소장이 되어 군인으로 활동하였습니다. 6두품 유학은 최치원 등에 해당하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④장보고는 청해진을 거점으로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 교통과 중계 무역을 장악하였으므로 맞는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