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시조가 아유타국에서 온 공주와 혼인했다는 설화는 대가야가 아니라 금관가야 수로왕과 허황옥의 이야기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핵심 개념
대가야 - 이진아시왕과 고령 세력
제시문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대가야 건국 설화입니다. 시조가 이진아시왕이고 도설지왕까지 16대 520년이 이어졌다는 점, 가야산신 정견모주가 뇌질주일(대가야 시조)과 뇌질청예(금관가야 수로왕)를 낳았다는 이야기는 모두 경북 고령의 대가야를 가리킵니다. 대가야는 5세기 후반 금관가야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쇠퇴한 뒤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고, 479년 남제에 사신을 보내 '가라국왕 하지'라는 이름으로 작호를 받았습니다. 가야 문제는 전기(금관가야, 김해)와 후기(대가야, 고령)의 특징을 구분해 외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5세기 후반 금관가야가 고구려의 공격으로 약해진 뒤 대가야가 후기 가야 연맹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했으므로 맞는 설명입니다.
②고령 지산동 고분군은 대가야 지배층의 무덤으로, 금동관·순장 흔적 등이 확인된 대표적 대가야 문화유산입니다.
③아유타국 공주(허황옥)와 혼인했다는 설화의 주인공은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입니다. 대가야 시조는 이진아시왕이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④대가야는 전성기에 소백산맥을 넘어 지금의 전라북도 남원·장수 일대까지 세력을 넓혔고, 이 지역에서 대가야계 유물이 출토됩니다.

정답ㄱ(고려의 제술업 중시)과 ㄷ(조선 기술관의 정3품 한품서용)이 옳은 설명입니다.
핵심 개념
고려·조선의 과거제도와 음서
고려와 조선의 관리 등용제도를 비교하는 문제입니다. 고려의 과거는 문과(제술업·명경업), 잡업, 승과로 구성되었는데 한문학 능력을 보는 제술업이 유교 경전을 보는 명경업보다 중시되었습니다. 국자감시(진사시)는 국자감 학생뿐 아니라 향공·사학 12도 출신 등이 두루 응시하는 예비시험이었습니다. 조선은 문과·무과·잡과 체제였고, 잡과 출신 기술관은 한품서용 원칙에 따라 승진에 제한을 받았습니다. 음서 역시 고려는 5품 이상 관리의 자손에게 폭넓게 주어 재상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조선은 2품 이상으로 대상이 크게 줄고 음서 출신은 문과에 급제하지 않으면 고위직 진출이 어려웠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ㄱ은 고려에서 제술업이 명경업보다 중시되어 합격자가 우대받았다는 사실로 옳고, ㄷ은 조선 잡과 출신 기술관이 소속 관청에서 최고 정3품 당하관까지 승진할 수 있었다는 한품서용 규정과 맞습니다. 따라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②ㄱ은 옳지만 ㄹ이 틀립니다. 조선의 음서 대상은 고려보다 크게 축소되었고 음서 출신의 고위직 진출도 제한되었습니다.
③ㄴ이 틀립니다. 고려 국자감시는 국자감 학생만이 아니라 향공·사학 출신 등도 응시할 수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④ㄷ은 옳지만 ㄹ이 틀리므로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조선의 음서는 대상과 승진 모두에서 고려와 달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