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의 막집 등에서 이동 생활을 하였다.
핵심 개념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와 구석기 시대
경기도 연천군 한탄강 유역에서 출토된 아슐리안 계통 주먹도끼는 구석기 시대를 대표하는 뗀석기입니다. 이 발견은 동아시아에는 찍개 문화만 있고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없다고 본 모비우스의 학설을 뒤집은 결정적 증거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밑줄 친 시대는 구석기 시대이며, 이 시기 사람들은 사냥과 채집을 하며 이동 생활을 했고 무리를 지어 살았다는 점을 기준으로 선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구석기인은 사냥감을 따라 이동하며 동굴이나 바위 그늘, 강가에 지은 막집에서 임시로 거주하였습니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 주거 형태에 해당하므로 옳은 설명입니다.
②내부에 화덕을 갖춘 움집이 일반적 주거 형태가 된 것은 정착 생활이 시작된 신석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구석기 시대 설명으로는 틀렸습니다.
③토기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하고 식량을 저장한 것은 신석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토기가 사용되지 않았으므로 틀렸습니다.
④구릉에 마을을 이루고 주변에 도랑(환호)을 파고 목책을 두른 것은 방어 시설이 필요했던 청동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구석기 시대와는 맞지 않습니다.

정답도적을 잡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시작되었다.
핵심 개념
개경 환도에 반대한 삼별초
고려가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하자 이에 반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진도, 다시 제주도로 근거지를 옮기며 대몽 항쟁을 이어간 부대는 삼별초입니다. 삼별초는 최우가 치안 유지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비롯되었으며, 야별초가 좌별초와 우별초로 나뉘고 여기에 몽골에 포로로 잡혔다 돌아온 병사들로 구성된 신의군이 더해져 삼별초가 완성되었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포수·사수·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제된 부대는 임진왜란 중 설치된 조선의 훈련도감입니다. 고려의 삼별초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②윤관의 건의로 편성된 기병 중심 부대는 고려 숙종 때 여진 정벌을 위해 만든 별무반입니다. 삼별초가 아닙니다.
③삼별초는 최우 집권기에 도적을 잡기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비롯되었고, 이것이 좌·우별초로 확대되고 신의군이 더해져 삼별초가 되었습니다. 옳은 설명입니다.
④양계 지방에서 국경 방어를 맡았던 상비 전투부대는 고려의 지방군인 주진군입니다. 삼별초와는 다른 조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