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 민족주의사학, ㉡ 사회경제사학, ㉢ 실증사학
핵심 개념
일제강점기 한국사 연구의 세 흐름 — 민족주의·사회경제·실증사학
일제강점기 우리 역사학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민족주의사학은 민족의 주체적 발전과 문화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독립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마련하려 했고 박은식·신채호가 대표적입니다. 사회경제사학은 유물사관(사회구성체 발전 단계론)에 입각해 우리 역사도 세계사의 보편적 발전 법칙을 따랐음을 밝히려 했으며 백남운·이청원이 대표적입니다. 실증사학은 개별 사실의 문헌 고증을 중시하는 순수 학문으로서의 역사학을 지향했고 이병도·손진태가 참여한 진단학회가 중심이었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은 민족정신을 강조한 박은식·신채호의 민족주의사학, ㉡은 유물사관에 기반한 백남운·이청원의 사회경제사학, ㉢은 문헌 고증을 중시한 이병도·손진태의 실증사학으로 모두 정확히 대응합니다.
②박은식·신채호는 실증사학이 아니라 민족주의사학이며, 백남운·이청원도 민족주의사학이 아니라 사회경제사학이므로 배치가 어긋납니다.
③㉠(민족주의사학)은 맞지만 ㉡을 실증사학, ㉢을 사회경제사학으로 놓은 것이 뒤바뀌었습니다. 백남운은 사회경제사학입니다.
④박은식·신채호를 사회경제사학으로 본 것부터 틀렸습니다. 세 학파의 인물 배치가 모두 어긋납니다.
현행법 기준: 2026-07

정답ㄷ(황룡사탑·초조대장경 소실), ㄹ(김윤후의 살리타 격퇴), ㅁ(팔만대장경 조판)
핵심 개념
몽골 침입기(1231~) 고려의 항쟁
고려는 1231년부터 여러 차례 몽골의 침입을 받았습니다. 최씨 무신정권은 1232년 강화도로 천도해 장기 항전에 들어갔고, 이 시기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몽골 장수 살리타(살례탑)를 사살했으며(1232), 1238년에는 황룡사 구층목탑과 초조대장경이 소실되었습니다. 또 부처의 힘으로 몽골을 물리치려는 염원을 담아 팔만대장경(재조대장경)을 조판(1236~1251)했습니다. 반면 무신정권 초기의 봉기나 삼별초의 개경 환도 반대(1270)는 몽골 침입기와 시점이 다릅니다.
선지별 해설
①ㄱ(망이·망소이·만적의 봉기)은 12세기 후반 무신정권기 사건이고, ㄴ(강화 천도 반대)도 사실과 맞지 않아 둘 다 몽골 침입기가 아닙니다.
②ㅁ(팔만대장경 조판)은 몽골 침입기가 맞지만, ㄱ(무신정권기 봉기)은 몽골 침입 이전이므로 함께 묶을 수 없습니다.
③ㄷ·ㄹ은 몽골 침입기가 맞으나, ㄴ의 '삼별초가 강화 천도에 반대'는 오류입니다. 삼별초는 강화 천도가 아니라 1270년 개경 환도에 반대해 봉기했습니다.
④ㄷ(1238년 황룡사 구층목탑·초조대장경 소실), ㄹ(1232년 처인성에서 김윤후가 살리타 격퇴), ㅁ(몽골 격퇴 염원의 팔만대장경 조판)은 모두 몽골 침입기에 일어난 사실입니다.
현행법 기준: 202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