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넓은 의미의 정치인 (가)는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도 당연히 정치 현상으로 봅니다.
핵심 개념
정치를 보는 두 관점 — 넓은 의미 vs 좁은 의미
정치의 의미는 두 가지로 나뉩니다. 좁은 의미(협의)의 정치는 국가 특유의 현상으로 보아 정치권력의 획득·유지·행사와 관련된 활동만 정치로 봅니다. 반면 넓은 의미(광의)의 정치는 국가뿐 아니라 가정·학교·회사·아파트 입주민 회의처럼 모든 사회 집단에서 나타나는 대립과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활동 전부를 정치로 봅니다. 아파트 입주민 회의를 정치 현상으로 보는 (가)는 넓은 의미, 보지 않는 (나)는 좁은 의미의 관점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넓은 의미가 좁은 의미를 포함한다는 점입니다. 즉 (가)는 국가 관련 현상도 당연히 정치로 보며,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다양한 갈등을 설명하는 데 오히려 유리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가)는 넓은 의미의 정치로, 국가 이외의 다양한 사회 집단에서 벌어지는 갈등까지 포섭하므로 다원화된 현대 사회의 정치 현상을 설명하기에 오히려 유리합니다. 설명이 어려운 쪽은 국가 현상만 보는 (나)입니다.
②공공시설 설치 지역 선정을 둘러싼 지방자치단체 간 갈등은 정치권력이 개입된 국가 영역의 현상이므로 좁은 의미로도 정치입니다. 넓은 의미인 (가)는 좁은 의미를 포함하므로 이를 당연히 정치 현상으로 봅니다.
③가족 간 유산 상속 갈등은 국가 정치권력과 무관한 사적 집단의 갈등이므로, 좁은 의미의 정치인 (나)는 이를 정치 현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④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은 정치권력의 행사 그 자체이므로 좁은 의미의 정치인 (나)도 당연히 정치 현상으로 봅니다.

정답1970년대는 냉전 강화가 아니라 데탕트(긴장 완화) 시기였고 공산권에 문호를 개방했으므로 틀린 설명입니다.
핵심 개념
우리나라 국제 관계의 시대별 변화
우리나라 외교의 흐름은 시기별 국제 정세와 맞물려 이해해야 합니다. 1950~60년대는 냉전 하에서 미국 중심의 반공·자유 진영 외교였지만, 1970년대는 미·중 데탕트로 대표되는 냉전 완화(긴장 완화)의 시기였고 우리나라도 1973년 6·23 평화통일 외교정책 선언을 통해 공산권 국가에 문호를 개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노태우 정부의 북방 외교로 헝가리·구소련·중국 등과 잇달아 수교했고, 1990년대 탈냉전기에는 안보 외교를 유지하면서도 통상·경제 등 실리를 중시하는 외교로 나아갔습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전환해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1970년대는 미·중 화해와 미·소 데탕트로 냉전이 완화된 시기입니다. 우리나라도 1973년 6·23 선언으로 이념과 체제를 달리하는 국가에도 문호를 개방했으므로 '냉전 체제의 강화로 공산 진영을 배제했다'는 서술은 옳지 않습니다.
②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는 북방 외교를 표방하여 헝가리(1989), 구소련(1990), 중국(1992) 등 공산권 국가와 국교를 수립하며 관계 개선을 추진했습니다.
③1990년대 탈냉전기에는 한미 동맹을 축으로 한 안보 외교를 유지하면서도 통상·경제 협력을 중시하는 실리 외교를 병행했습니다.
④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꾸준히 늘렸고,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여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전환한 첫 사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