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검은 간 토기는 철기 시대의 토기이므로 신석기 시대의 생활상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핵심 개념
신석기 시대 덧무늬 토기와 생활상
제시문의 '그릇 표면에 점토 띠를 덧붙여 문양 효과를 낸'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덧무늬 토기(융기문 토기)입니다. 부산 동삼동, 울주 신암리, 양양 오산리는 모두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으로 이른 민무늬 토기·덧무늬 토기·눌러찍기무늬 토기 등이 출토됩니다. 신석기인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하였고, 조·기장 같은 밭작물을 기르는 원시 농경과 가락바퀴·뼈바늘을 이용한 원시 수공업을 시작하였습니다. 토기의 계보를 '신석기(덧무늬·빗살무늬) → 청동기(민무늬·미송리식) → 철기(검은 간 토기·덧띠 토기)'로 묶어 두면 이런 유형은 바로 풀립니다.
선지별 해설
①신석기인은 강가나 바닷가에 원형 또는 모서리가 둥근 방형의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하였습니다. 집 중앙에 화덕을 두고 4~5명이 거주하는 규모였습니다.
②검은 간 토기(흑도)는 덧띠 토기와 함께 철기 시대를 대표하는 토기입니다. 신석기 시대에는 덧무늬 토기와 빗살무늬 토기가 사용되었으므로 이 선지가 옳지 않으며, 곧 정답입니다.
③가락바퀴(방추차)와 뼈바늘은 실을 뽑아 옷과 그물을 만든 신석기 시대 원시 수공업을 보여 주는 대표 유물입니다.
④신석기 시대에 조·피·기장 등 잡곡을 재배하는 원시 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황해도 봉산 지탑리와 평양 남경 유적에서 나온 탄화된 좁쌀이 그 증거입니다.

정답단궁·과하마·반어피는 동예의 대표적인 특산물입니다.
핵심 개념
동예의 정치 구조와 특산물
대군장이 없고 후·읍군·삼로가 하호를 다스렸다는 서술, 그리고 산천을 중요시하여 함부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내용(책화의 배경)에서 ㉠은 동예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동예는 왕이 없이 군장이 다스리는 단계에 머물렀고, 매년 10월에 무천이라는 제천 행사를 열었으며, 같은 씨족끼리 혼인하지 않는 족외혼을 지켰습니다. 다른 부족의 영역을 침범하면 노비·소·말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 풍습이 있었고, 단궁·과하마·반어피가 유명한 특산물이었습니다. 초기 국가 문제는 제천 행사(부여 영고, 고구려 동맹, 동예 무천, 삼한 수릿날·계절제)와 고유 풍습으로 구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영고는 12월(은력 정월)에 열린 부여의 제천 행사입니다. 동예의 제천 행사는 10월에 열린 무천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②민며느리제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워 며느리로 삼는 옥저의 혼인 풍속입니다. 동예의 혼인 풍속은 족외혼입니다.
③동예는 짧은 활인 단궁, 키가 작아 과실나무 아래를 지날 수 있다는 과하마, 바다표범 가죽인 반어피가 특산물로 유명하였습니다. 정답입니다.
④제가 회의는 고구려의 귀족 회의로, 중대한 범죄자를 여기서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습니다. 동예에는 이런 연맹체 차원의 귀족 회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