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유리왕은 재위 22년(서기 3년)에 도읍을 졸본에서 국내성으로 옮겼습니다.
핵심 개념
「황조가」를 지은 고구려 유리왕
제시된 시가는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이 지었다고 전하는 「황조가(黃鳥歌)」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유리왕은 왕비 송씨가 죽은 뒤 화희와 치희를 계실로 맞았는데 두 사람이 다투다 치희가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고, 돌아오던 왕이 나무 아래에서 정답게 노니는 꾀꼬리 한 쌍을 보고 자신의 외로움을 노래한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문항은 사실상 '유리왕 재위기의 사실'을 묻는 문제이며, 고구려 초기 왕들의 업적(유리왕·태조왕·고국천왕·미천왕·소수림왕)을 왕별로 정확히 구분하고 있는지가 관건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진대법은 2세기 말 고국천왕이 재상 을파소의 건의를 받아 194년에 실시한 춘대추납의 빈민 구제 제도입니다. 유리왕과는 200년 가까이 차이가 나므로 재위 기간의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②낙랑군 축출은 4세기 초 미천왕이 313년에 이룬 업적입니다. 미천왕은 서안평을 점령한 뒤 낙랑군과 대방군을 차례로 몰아내 한반도 내 중국 군현 세력을 완전히 소멸시켰습니다.
③유리왕은 재위 22년(서기 3년)에 압록강 중류의 졸본에서 국내성(위나암성)으로 천도하였습니다. 이는 평지성과 산성을 결합한 고구려 도성 체제의 출발점이자 유리왕 대의 대표적 사실이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④율령 반포는 4세기 후반 소수림왕이 373년에 단행한 조치입니다. 소수림왕은 전진에서 불교를 수용(372)하고 태학을 설립한 데 이어 율령을 반포하여 중앙집권 체제를 정비하였습니다.

정답안향은 원 간섭기인 충렬왕 때 원에서 성리학을 처음 국내에 소개한 인물입니다.
핵심 개념
회헌 안향과 성리학의 전래
제시문의 '회헌사(晦軒祠)'가 결정적 단서입니다. 회헌은 고려 후기 유학자 안향의 호이며, 안향의 고향인 경상도 순흥(풍기)에 풍기군수 주세붕이 1543년(중종 38) 사당과 교육 시설을 갖춰 세운 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입니다. 이 서원은 뒤에 이황의 건의로 명종에게서 '소수서원'이라는 편액과 토지·노비를 받아 최초의 사액 서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밑줄 친 '유학자'는 안향이며, 조선 시대 인물인 주세붕·이황·이이와 혼동하지 않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해주향약은 조선 중기 율곡 이이가 황해도 해주에서 시행·보급한 향약입니다. 이이는 서원향약도 만들었으며, 고려 시대 인물인 안향과는 시기가 전혀 다릅니다.
②안향은 충렬왕 때 왕을 따라 원에 다녀오면서 『주자전서』를 필사하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들여와 성리학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였습니다. 원 간섭기라는 시기도 정확히 맞으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③『성학십도』는 조선 선조 때 퇴계 이황이 어린 국왕에게 성리학의 요체를 열 개의 도설로 정리해 올린 책입니다. 경연에서 강의한 것도 이황이므로 안향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④『해동제국기』는 조선 성종 때인 1471년 신숙주가 일본과 류큐의 지리·풍속·외교 관례를 정리해 편찬한 견문록입니다. 안향의 저술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