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상감청자는 신라 말기가 아니라 고려 중기인 12세기 중엽부터 제작되었으므로 적절하지 않은 설명입니다.
핵심 개념
고려 비색청자와 상감청자의 발달
제시문은 송나라 사신 서긍이 인종 때 고려에 다녀간 뒤 남긴 『고려도경』의 한 대목으로, 푸른 빛깔을 뜻하는 비색(翡色)과 연꽃에 엎드린 오리 모양 술병(주자)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이 유물은 고려청자입니다. 고려청자는 11세기 순청자 단계를 거쳐 12세기 전반 비색청자로 절정에 이르렀고, 12세기 중엽부터는 표면을 파낸 자리에 백토·흑토를 메워 무늬를 넣는 상감기법이 더해져 상감청자로 발전하였습니다. 주요 생산지는 전라도 강진과 부안이었으며, 왕실과 관청, 귀족 등 지배층의 고급 생활용기로 쓰였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고려청자의 대표적 가마터는 전라남도 강진과 전라북도 부안으로, 이곳에서 최상급 청자가 대량 생산되어 바닷길과 조운로를 통해 개경으로 공급되었습니다.
②청자는 흙과 유약, 가마 기술이 모두 까다로워 제작 비용이 높았기 때문에 왕실과 관청, 문벌귀족 등 지배층의 식기·문방구·향로 등으로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③제시문 자체가 송의 사신 서긍이 지은 『고려도경』의 기록으로, 그는 고려청자의 빛깔을 비색이라 부르며 근년에 제작이 공교해지고 광택이 아름다워졌다고 극찬하였습니다.
④상감청자는 신라 말기가 아니라 고려 중기인 12세기 중엽부터 본격적으로 제작되어 무늬가 다양해졌고, 원 간섭기 이후 점차 쇠퇴하여 분청사기로 이어졌습니다. 시기가 맞지 않으므로 적절하지 않은 설명이며 이것이 정답입니다.

정답훈요 10조는 연등회·팔관회를 함부로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이어가라고 하였으므로, 행사를 축소하라는 설명은 옳지 않습니다.
핵심 개념
고려 태조 왕건의 훈요 10조
제시문은 평범한 가문에서 추대를 받아 즉위하여 재위 19년 만에 삼한을 통일하였고 왕위에 오른 지 25년이 되었다고 밝히면서, 후대의 왕들에게 아침저녁으로 펼쳐 보아 귀감으로 삼으라고 당부하는 유훈입니다. 따라서 밑줄 친 '이것'은 고려 태조 왕건이 943년에 남긴 훈요 10조입니다. 훈요 10조에는 불교 숭상과 사원 남설 금지, 도선의 풍수지리설에 따른 사찰 건립, 서경 중시, 연등회·팔관회의 계승, 중국 문물의 주체적 수용과 거란 배척, 간언 수용과 요역·조세 경감, 경사(經史) 탐독 등 고려 왕조 운영의 기본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훈요 제6조는 연등은 부처를 섬기고 팔관은 천령과 오악·명산·대천·용신을 섬기는 것이니, 뒷날 간신이 이 행사를 더하거나 줄이자고 건의하더라도 반드시 금지하라고 하였습니다. 축소가 아니라 원형 그대로 계승하라는 취지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②제2조에서 사원은 도선이 산수의 순역을 살펴 정한 자리에만 세우라고 하여 풍수지리 사상을 존중하였고, 제5조에서 서경은 수덕이 순조로운 땅이니 해마다 100일 이상 머물러 안녕을 이루라고 하여 서경을 중시하였습니다.
③제7조에서 임금이 신민의 마음을 얻는 일이 가장 어려우니, 그 마음을 얻으려면 간언을 따르고 참소하는 자를 멀리하는 것이 요체라고 하였습니다. 제시문의 유훈 내용과 부합합니다.
④제7조는 이어서 백성을 때에 맞추어 부리고 요역과 부세를 가볍게 하며 농사의 어려움을 알아야 민심을 얻고 나라가 부강하고 백성이 편안해진다고 하였으므로 옳은 설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