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김유신은 매부인 김춘추(무열왕)의 왕위 계승을 지원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삼국 통일의 명장 김유신
제시문은 660년 백제 정벌 당시의 기록입니다. 당의 장수 소정방이 기벌포에 도착하여 신라군이 늦게 왔다는 이유로 신라 독군 김문영을 처형하려 하자, 밑줄 친 '그'가 나서서 '황산 전투를 보지도 않고 늦게 왔다며 죄를 주려 하니, 먼저 당나라 군사와 결전하겠다'라며 강하게 맞섰습니다. 이처럼 당군 앞에서도 신라군의 자존심을 지킨 인물은 김유신입니다. 김유신은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의 백제군을 격파하고 나·당 연합군의 백제·고구려 정벌을 이끈 삼국 통일의 핵심 장군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살수에서 수의 군대를 물리친 것은 고구려의 을지문덕이 이끈 살수 대첩(612)입니다. 김유신과는 관련이 없어 틀렸습니다.
②김유신은 여동생을 김춘추와 혼인시켜 인척 관계를 맺고, 진골 출신인 김춘추가 최초의 진골 왕(태종 무열왕)으로 즉위하는 것을 군사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옳은 설명입니다.
③청해진을 설치하고 해상 무역을 전개한 인물은 통일 신라 흥덕왕 때의 장보고입니다. 시기와 인물이 달라 틀렸습니다.
④대가야를 정벌하여 낙동강 유역을 확보한 것은 6세기 진흥왕 때의 일(이사부·사다함)입니다. 김유신의 활동과 무관하여 틀렸습니다.

정답지증왕은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왕' 칭호를 사용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우산국을 복속시킨 지증왕
제시문은 이찬 이사부가 하슬라주 군주가 되어 나무 사자 모형을 이용한 계책으로 우산국(울릉도)을 항복시킨 기록으로, 512년 지증왕 때의 일입니다. 지증왕은 6세기 초 신라의 체제를 정비한 왕으로,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왕' 칭호를 사용하였으며, 우경(牛耕)을 장려하고 순장을 금지하였습니다. 또한 시장 감독 기관인 동시전을 설치하는 등 국가 발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독서삼품과를 실시한 것은 통일 신라 원성왕(788)입니다. 지증왕과 시기가 크게 달라 틀렸습니다.
②지증왕은 마립간 대신 '왕'이라는 중국식 칭호를 쓰고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였습니다. 우산국 복속과 같은 시기의 업적으로 옳은 설명입니다.
③관료전을 지급하고 녹읍을 폐지한 것은 통일 신라 신문왕(687~689)입니다. 지증왕 대의 일이 아니어서 틀렸습니다.
④장문휴를 보내 당의 등주를 공격한 것은 발해 무왕(732)의 일입니다. 신라 지증왕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 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