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옥저에는 민며느리제라는 혼인 풍습이 있었습니다.
핵심 개념
가족 공동 무덤(골장제)으로 알아보는 옥저
제시문의 '시체를 가매장했다가 뼈를 추려 가족 공동 무덤인 커다란 목곽에 안치'하는 풍습은 옥저의 골장제(세골장, 두벌묻기)입니다. 목곽 입구에 쌀 항아리를 매달아 두었다는 서술도 『삼국지』 위서 동이전 옥저조의 대표적인 기록입니다. 옥저는 함경도 동해안에 위치해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했으나, 왕이 없이 읍군·삼로라는 군장이 다스렸고 일찍부터 고구려에 복속되어 공물을 바쳤습니다. 혼인 풍습으로는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운 뒤 며느리로 삼는 민며느리제가 있었습니다. 초기 국가별 풍습(부여-사출도·영고, 고구려-서옥제·동맹, 옥저-민며느리제·골장제, 동예-책화·무천, 삼한-소도·5월과 10월 계절제)을 짝지어 외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민며느리제는 어린 여자아이를 신랑 집에서 데려다 키운 뒤 성인이 되면 친정에 돌려보내고 예물을 치러 혼인하는 옥저의 풍습이므로, 제시문의 나라와 일치하는 옳은 설명입니다.
②마가·우가·저가·구가 등 제가가 별도로 사출도를 다스린 것은 부여의 특징입니다. 옥저는 왕이 없고 읍군·삼로가 다스린 군장 국가였으므로 틀린 설명입니다.
③소도는 천군이 주관하며 죄인이 도망쳐도 잡아가지 못한 삼한의 신성 구역입니다. 제정 분리를 보여주는 삼한의 요소이므로 옥저에 대한 설명으로는 틀렸습니다.
④무천은 매년 10월에 열린 동예의 제천행사입니다. 동예는 이 밖에 책화와 족외혼 풍습으로도 구분되므로, 옥저와 연결하면 틀린 설명이 됩니다.

정답능산리 고분군에 계단식 돌무지무덤이 있다는 설명이 틀렸습니다(굴식 돌방무덤 중심).
핵심 개념
백제 관련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무덤 양식
선지에 등장하는 미륵사지, 정림사지, 능산리 고분군은 2015년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에 속하고,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송산리 고분군(현 무령왕릉과 왕릉원)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특히 무덤 양식 구분이 핵심입니다. 계단식 돌무지무덤(적석총)은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한성 도읍기 무덤으로 서울 석촌동 고분군에서 볼 수 있고, 웅진·사비기의 공주 송산리·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이 중심이며 무령왕릉만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전축분)입니다. 석탑에서는 목탑 양식을 계승한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이를 세련되게 발전시킨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이 백제 석탑의 두 축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구조를 돌로 옮겨 놓은 현존 최고(最古)·최대의 석탑으로, 목탑 양식의 석탑이라는 설명은 옳습니다.
②부여 정림사지에는 백제의 5층 석탑이 남아 있으며, 1층 탑신에 당의 소정방이 백제 평정을 기록한 글이 새겨져 있어 '평제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③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사비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중심이며 사신도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계단식 돌무지무덤은 한성기 서울 석촌동 고분군의 특징이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④공주 무령왕릉에서는 무덤 주인이 백제 사마왕(무령왕)과 왕비임을 알려주는 지석이 출토되어, 삼국 시대 고분 중 주인공이 확인된 드문 사례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