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김부식은 금을 함께 공격하자는 송의 요청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핵심 개념
고려·송·요·금의 역학 관계 변화
이 글은 고려 건국 직후부터 송이 사신을 보내지 않게 된 12세기 후반까지 고려와 송, 그리고 요·금 사이의 외교 관계 변화를 시간 순으로 서술합니다. 고려는 귀주대첩에서 요를 물리쳤으나 강해지는 요를 중시해 송과 끊고 요와 우호를 맺었고, 이후 송 신종의 관계 복원 제안을 문종이 문물 수용 목적으로 수용합니다. 다만 고려는 서적 수입에만 관심을 두고 물자 지원 요청은 거절했습니다. 금이 요와 송을 차례로 무너뜨린 뒤 송이 고려에 함께 금을 정벌하자고 제안하자 김부식이 반대하고 인종이 동의하며 거절했다는 흐름을 정확히 짚어 선지와 대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지문에서 송이 함께 금을 정벌하자고 제안하자 김부식이 송에 사신으로 가 금 군대의 위력을 봤다면서 '송의 요청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했고 인종도 동의했다고 서술하므로 부합합니다.
②묘청의 난 진압에 필요한 군대는 송이 보내주겠다고 한 것이며, 그 대가로 고려를 거쳐 금을 공격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인종이 금에 군대 파견을 요청한 사실은 없습니다.
③귀주대첩에서 요를 물리친 것은 고려이며, 이후 고려가 송과 관계를 끊고 요와 우호를 맺었습니다. 요가 귀주대첩을 계기로 송에 사신을 보냈다는 내용은 지문에 없습니다.
④송이 요를 되찾기 위해 고려에서 물자를 지원받고자 한 것은 맞으나, 고려에 군대를 보내 함선을 건조했다는 서술은 지문에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⑤신종은 고려가 관계를 회복하자는 요청에 기뻐했고 환영회를 열었으며, 물자 지원 요청을 고려가 들어주지 않았을 뿐 외교 관계를 끊지는 않았습니다. 요를 함께 치자는 제안 거부로 관계를 끊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릅니다.

정답정희왕후 수렴청정기에 원상들은 승정원에서 국정 결정을 내렸습니다.
핵심 개념
조선 세조~성종기 원상의 국정 운영
이 글은 세조 13년 명 사신 접대를 계기로 승정원에 상주하게 된 재상, 곧 '원상'이 예종과 성종 초까지 왕 대신 국정을 좌우한 과정을 다룹니다. 원상들은 계유정난의 주역으로 의정부 대신이었으나 명 사신이 돌아간 뒤에도 승정원에 나가 국정 결정을 내리고 관리들의 집행을 감독했습니다. 예종 때는 6조 판서를 겸하며 6조 관원의 업무 보고를 받았고, 예종 후임으로 자을산군(성종)을 추대했으며 정희왕후 수렴청정 기간에도 국정을 처리하고 사후 보고했습니다. 사헌부·사간원의 비판과 박시형의 상소, 성종 7년 관행 폐지까지의 흐름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박시형은 원상들이 승정원에서 국정을 보는 관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을 뿐, 승정원을 없애거나 의정부를 최고 관서로 승격시키자고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②지문은 원상들이 정희왕후 수렴청정 기간 내내 예종 때처럼 국정을 처리하고 정희왕후에게는 사후에 보고했다고 서술합니다. 예종 때 원상들이 승정원에서 국정 결정을 내렸으므로 부합합니다.
③예종 아들이 유아라 걱정한 것은 정희왕후이며, 원상들은 오히려 나이가 많은 자을산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신숙주가 즉위에 반대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④김종서는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제거한 인물이며, 원상으로 삼으려는 데 반대해 내쫓았다는 서술은 지문에 없습니다.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⑤성종이 원상의 명 사신 접대 임무나 승정원 감독 역할에 관해 발언했다는 내용은 지문에 없습니다. 성종은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그만두자 원상의 국정 관행 자체를 없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