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대가야는 562년 신라 진흥왕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후기 가야 연맹의 맹주, 대가야
5세기 후반 가야의 주도 세력으로 성장하여 후기 가야 연맹을 이끈 나라는 경북 고령의 대가야입니다. 금관가야가 5세기 초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남정으로 큰 타격을 입은 뒤, 낙동강 상류의 내륙에 자리 잡고 풍부한 철 생산을 바탕으로 성장한 대가야가 새로운 맹주가 되었습니다. 대가야는 479년 중국 남제에 사신을 보내 '가라국왕'의 작호를 받았고, 522년에는 신라와 결혼 동맹을 맺기도 했으나, 결국 562년 신라 진흥왕이 보낸 이사부의 공격으로 멸망하면서 가야 연맹 전체가 신라에 흡수되었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대가야는 562년 신라 진흥왕이 이사부와 사다함을 보내 공격하면서 멸망하였고, 이로써 가야 연맹은 완전히 신라에 병합되었습니다.
②사비로 천도하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친 것은 백제 성왕(538년)의 일이므로 대가야와 관계가 없습니다.
③5경 15부 62주의 지방 행정 구역은 발해의 통치 조직입니다. 대가야는 연맹 왕국 단계에 머물러 이러한 중앙 집권적 지방 제도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④평양으로 천도하고 남진 정책을 추진한 것은 고구려 장수왕(427년)입니다. 오히려 대가야는 고구려 남진의 여파로 성장한 세력입니다.

정답고려 성종 때 건원중보가 발행되었으나 널리 유통되지는 못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고려의 경제 상황과 화폐 유통
고려의 경제는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경제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국가 주도의 화폐 발행이 시도된 점이 특징입니다. 성종 때 우리나라 최초의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가 주조되었고, 숙종 때는 의천의 건의로 주전도감을 설치해 해동통보·삼한통보·활구(은병) 등을 발행했습니다. 그러나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와 유통 경제의 미성숙 때문에 화폐는 널리 쓰이지 못하고 곡물과 삼베가 여전히 주요 교환 수단이었습니다. 시기 구분을 묻는 문제이므로 고구려(진대법), 조선 전기(농사직설), 조선 후기(덕대제)의 사실을 정확히 갈라내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이 을파소의 건의로 실시한 춘대추납의 구휼 제도입니다. 고려의 구휼 기구로는 흑창·의창·상평창 등이 있었습니다.
②건원중보는 고려 성종 때 주조된 최초의 금속 화폐로, 자급자족적 경제 구조 탓에 실제 거래에서는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곧 유통이 부진해졌습니다.
③덕대제는 조선 후기에 물주에게 자본을 받은 전문 경영인(덕대)이 광산을 경영하던 방식으로, 고려의 광업 경영 형태가 아닙니다.
④『농사직설』은 조선 세종 때 정초 등이 우리 풍토에 맞는 농법을 정리해 편찬한 농서입니다. 고려의 농서로는 이암이 원에서 들여온 『농상집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