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청동기 시대에는 잉여 생산물을 둘러싸고 계급이 발생하고 지배자인 군장(부족장)이 출현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청동기 시대의 사회 모습 — 계급 발생과 군장(부족장)의 출현
청동기 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불평등'이 제도화된 시기입니다. 벼농사를 비롯한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잉여 생산물이 생겼고, 이를 차지한 세력이 등장하면서 사유재산과 계급이 발생했습니다. 청동기는 무기·의기(儀器)·장신구처럼 지배층의 권위를 드러내는 용도로만 쓰였고, 농기구는 여전히 돌과 나무로 만들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대표 유물은 비파형동검·거친무늬거울·반달돌칼이고, 대표 유적은 고인돌·돌널무덤이며, 토기는 민무늬토기와 미송리식토기입니다. 사람들은 배산임수의 구릉지에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방어를 위해 목책과 환호를 둘렀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청동기 시대에는 농업 생산력 증대로 잉여 생산물이 생기면서 사유재산과 계급이 발생했고, 이를 바탕으로 군장(부족장)이 등장했습니다. 거대한 고인돌은 많은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었던 지배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②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토기는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와 미송리식토기, 붉은 간토기 등이므로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③철제 무기로 주변 나라를 정복한 것은 철기 시대의 모습입니다. 청동기 시대의 청동은 무르고 귀해 지배층의 무기·제사 도구·장신구로 제한적으로 쓰였습니다.
④동굴이나 막집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간 것은 구석기 시대의 생활입니다. 청동기 시대에는 농경을 바탕으로 구릉지에 정착 취락을 이루고 지상 가옥에 가까운 움집에서 살았습니다.

정답12목에 지방관을 파견한 것은 광종이 아니라 성종 때의 일이므로 옳지 않습니다.
핵심 개념
노비안검법과 대목왕후 — 고려 광종의 왕권 강화
제시문의 '노비를 조사하여 시비를 가려내게 하였다'는 대목은 노비안검법(956)이고, 이를 만류한 '대목왕후'는 광종의 비입니다. 따라서 밑줄 친 왕은 고려 광종입니다. 광종은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허무는 노비안검법,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인 과거제 실시(958), 백관의 공복 제정(960), 주현공부법 시행 등으로 왕권을 크게 강화했습니다. 또한 광덕·준풍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고 개경을 황도라 칭하여 황제국 체제를 지향했으며, 빈민 구제 기구인 제위보를 설치하고 균여를 중심으로 귀법사를 창건하여 불교 교단을 정비했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광종은 963년 제위보를 설치하여 일정한 기금을 마련하고 그 이자로 빈민을 구제하게 했습니다. 광종 대의 대표적인 사회 시책입니다.
②광종은 963년 귀법사를 창건하고 균여를 주지로 삼아 화엄 교단을 통합하려 했습니다. 불교 세력을 왕권 아래 정비하려는 조치였습니다.
③광종은 즉위 초 '광덕', 이후 '준풍'이라는 독자 연호를 사용하고 개경을 황도, 서경을 서도라 부르며 황제국 체제를 표방했습니다.
④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한 것은 성종 2년(983)의 일로,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수용한 결과입니다. 광종 대에는 아직 지방관이 상시 파견되지 않았으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