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신석기시대의 특징으로 옳습니다.
핵심 개념
🔑 신석기시대 — 농경·목축의 시작과 정착 생활
신석기시대는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된 시기로, 간석기(마제석기)와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고 농경과 목축을 시작하면서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하게 된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른바 '신석기 혁명'이라 부르는 생산 경제로의 전환이 이때 일어났습니다. 시험에서는 구석기시대(뗀석기, 동굴·막집, 이동 생활, 채집·사냥)와 청동기시대(민무늬토기·미송리식 토기, 고인돌, 계급 발생)의 특징을 섞어 놓고 고르게 하므로, 시대별 유물·주거·생활 방식을 짝지어 외워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미송리식 토기는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토기로, 고인돌·비파형동검과 함께 고조선의 세력 범위를 보여 주는 유물입니다. 신석기시대의 대표 토기는 빗살무늬토기·이른 민무늬토기·덧무늬토기이므로 틀렸습니다.
②동굴이나 바위 그늘(막집)에서 살며 이동 생활을 한 것은 구석기시대입니다. 신석기시대에는 강가·해안가에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방형의 움집을 짓고 정착하였으므로 틀렸습니다.
③신석기시대에는 조·피·수수 등의 잡곡 농사와 가축 사육이 시작되어 식량을 직접 생산하게 되었고, 그 결과 한곳에 머무르는 정착 생활이 이루어졌습니다. 신석기 혁명의 핵심 내용이므로 옳은 설명입니다.
④연천 전곡리(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출토)와 공주 석장리는 모두 대표적인 구석기시대 유적입니다. 신석기시대의 대표 유적은 서울 암사동, 부산 동삼동, 제주 고산리, 양양 오산리 등이므로 틀렸습니다.

정답성왕이 538년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한 사실이 재위 기간의 일로 옳습니다.
핵심 개념
🔑 백제 성왕 — 국호 '남부여'와 관산성 전투
제시문의 '왕'은 백제 성왕(523~554)입니다. 국호를 '남부여'로 고쳐 부여 계승 의식을 드러냈고, 신라 진흥왕과 연합해 고구려를 공격하여 한강 하류 지역을 되찾았으나 곧바로 진흥왕의 배신으로 그 땅을 빼앗겼습니다. 이에 신라를 공격했다가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 성왕의 최후입니다. 성왕은 웅진에서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중앙 관청을 22부로 정비했으며, 수도를 5부, 지방을 5방으로 편제하고 노리사치계를 통해 일본에 불교를 전한 왕으로도 자주 출제됩니다.
선지별 해설
①성왕은 538년 좁은 웅진(공주)을 벗어나 금강 유역의 넓은 사비(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고쳤습니다. 백제 중흥의 출발점이 된 사건이므로 옳은 설명입니다.
②마한의 중심 세력이던 목지국을 병합하여 전라도 남해안까지 세력을 넓힌 왕은 4세기의 근초고왕입니다. 성왕의 업적이 아니므로 틀렸습니다.
③백제가 동진의 승려 마라난타를 통해 불교를 받아들인 것은 384년 침류왕 때입니다. 성왕은 오히려 일본에 불교를 전해 준 왕이므로 틀렸습니다.
④371년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왕은 근초고왕입니다. 성왕은 고구려와 싸워 한강 유역을 회복했지만 평양성 공격과는 무관하므로 틀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