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고구려는 10월에 제천행사(동맹)를 크게 치르고 국동대혈에 모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핵심 개념
고구려의 사회와 풍속
제시문은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고구려 조 기록입니다.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평원과 연못이 없어 골짜기 물을 식수로 삼았으며, 좋은 농경지가 없어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도 배를 채우기 부족했고, 성품이 흉악·급하며 노략질을 좋아했다'는 서술은 산악 지대에 자리 잡아 약탈 경제에 의존한 고구려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고구려는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열었고,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나라 동쪽의 큰 굴)에 모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각 나라의 고유 풍속(옥저 민며느리제, 부여 제가, 동예 책화)을 구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민며느리제라는 독특한 혼인 풍습은 옥저의 것입니다. 어린 여자아이를 데려다 키운 뒤 며느리로 삼는 풍습으로, 고구려의 풍속이 아닙니다.
②왕 아래에 가축의 이름을 딴 마가·우가·저가·구가 등의 관리를 둔 것은 부여의 제가 제도입니다. 이들은 사출도를 다스렸으며, 고구려가 아닙니다.
③고구려는 매년 10월에 동맹이라는 제천행사를 성대하게 치렀고,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시문의 고구려와 정확히 부합하는 설명입니다.
④다른 부족의 생활권을 침범하면 노비와 소·말로 변상하게 한 책화는 동예의 풍습입니다. 읍락 간 경계를 중시한 동예의 특징으로, 고구려와는 무관합니다.

정답무령왕은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백제 무령왕의 업적
제시문의 '영동대장군 백제 사마왕'은 무령왕(재위 501~523)을 가리킵니다. '사마'는 무령왕의 이름이며, 이 기록은 1971년 발굴된 공주 무령왕릉의 지석(묘지석) 내용입니다. 계묘년(523) 5월에 62세로 사망해 을사년(525)에 안장했다는 서술이 무령왕임을 확정해 줍니다. 무령왕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 통제를 강화하고, 중국 남조의 양나라와 교류하며 웅진 시기 백제의 중흥을 이끈 왕입니다. 각 업적이 어느 왕(고이왕·근초고왕·성왕)의 것인지 구분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16관등제를 마련하고 관리의 공복(관복 색)을 제정한 것은 3세기 고이왕의 업적입니다. 무령왕의 재위 기간과는 시기가 다릅니다.
②수도를 5부, 지방을 5방으로 나누어 정비한 것은 사비로 천도한 성왕의 업적입니다. 무령왕 때가 아닙니다.
③무령왕은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왕의 통제력을 강화하였습니다. 웅진 시기 백제 중흥을 상징하는 대표 정책입니다.
④남으로 마한을 통합하고 북으로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해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것은 4세기 근초고왕의 업적입니다. 무령왕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