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흑요석을 먼 곳에서 운반해 와 석기를 만들었다는 설명으로,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에 해당합니다.
핵심 개념
구석기 시대 — 공주 석장리 유적과 뗀석기 문화
제시문의 '공주시 장기면 석장리'는 1964년 발굴된 공주 석장리 유적으로, 남한에서 최초로 확인된 구석기 시대 유적입니다. 찍개·자르개 같은 뗀석기와 석기 제작터가 확인되어 구석기인의 석기 제작 기술 발달 과정을 보여 줍니다. 구석기 시대는 뗀석기를 사용하며 사냥과 채집으로 먹을거리를 얻고, 이동 생활을 하며 동굴이나 막집·바위 그늘에 살았습니다. 농경·토기·간석기·정착 생활은 신석기 시대부터, 고인돌·비파형동검 같은 요소는 청동기 시대부터 등장하므로 시대별 생활 모습을 구분해 두어야 합니다.
선지별 해설
①조·피·수수 등 곡식 재배가 시작된 것은 신석기 시대의 이른바 농경 시작(신석기 혁명) 이후입니다. 구석기 시대는 사냥·채집·어로에 의존했으므로 이 선지는 시대가 맞지 않습니다.
②고인돌은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계급이 발생하고 지배자가 등장했음을 보여 주는 유적입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이러한 대규모 무덤 축조가 확인되지 않습니다.
③진흙을 빚어 불에 구운 토기(이른 민무늬토기·빗살무늬토기)는 신석기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 식량의 저장과 조리에 쓰였습니다. 구석기 시대에는 토기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④가락바퀴(방추차)와 뼈바늘은 신석기 시대에 실을 뽑아 옷감을 짜던 원시적 수공업 도구입니다. 구석기 시대의 생활 모습이 아닙니다.
⑤구석기 후기에는 백두산·일본 규슈산 흑요석이 남한 여러 유적에서 출토되어, 원거리에서 흑요석을 들여와 날카로운 잔석기를 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구석기인의 이동성과 교류를 보여 주는 대표적 근거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정답고조선 건국 신화(단군 신화)는 '삼국사기'가 아니라 '삼국유사'와 '제왕운기' 등에 실려 있으므로 틀린 설명입니다.
핵심 개념
고조선 — 중국 문헌 속의 기록과 8조법
'관자'에 처음 등장하고 '전국책'·'사기'에 상세히 기록되며, 기원전 3세기 초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공으로 서쪽 2천 리 땅을 잃었다는 나라는 고조선입니다. 고조선은 청동기 문화를 배경으로 성립해 요령·대동강 유역을 무대로 발전했고, 부왕·준왕 등 왕위가 세습되며 상·대부·장군 등의 관직을 두었습니다. 기원전 2세기 초 위만이 무리를 이끌고 망명해 준왕을 몰아내고 집권했으며(위만조선), 중계 무역으로 성장하다 기원전 108년 한 무제의 공격으로 왕검성이 함락되며 멸망했습니다. 사회상은 '한서' 지리지에 전하는 8조법(범금 8조)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선지별 해설
①'사기' 조선열전에 따르면 위만은 무리 천여 명을 이끌고 고조선으로 망명해 서쪽 변경 수비를 맡았다가 준왕을 축출하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고조선에 해당하는 옳은 설명입니다.
②'관자'에는 고조선의 특산물로 문피(文皮), 즉 무늬 있는 짐승 가죽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고조선이 중국과 교역했음을 보여 주는 기록입니다.
③단군의 건국 이야기는 일연의 '삼국유사'와 이승휴의 '제왕운기', 그 밖에 '응제시주'·'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실려 있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삼국 이전 시기를 다루지 않아 단군 신화를 싣지 않았으므로 이 선지가 정답입니다.
④8조법에는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용서를 받으려면 50만 전을 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사유 재산과 화폐 사용, 노비 존재를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⑤'삼국지' 동이전이 인용한 '위략'에는 조선후가 연을 치려 하자 대부 예가 만류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대부라는 관직과 왕권의 존재를 보여 주는 고조선 관련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