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답대청의 사헌부 관원들은 인접한 주서의 기록을 바로 열람할 수 있었습니다.
핵심 개념
승정원의 조직과 공간 구성
이 글은 조선왕조에서 왕명 출납을 담당한 승정원의 관원 구성과 내부 공간을 설명하는 정보 확인형 지문입니다. 승정원은 정3품 승지 6명과 정7품 주서 3명 등으로 이루어졌고, 주서는 승정원을 통해 출납되는 공식 문서를 관리하며 군신 간 논의 내용을 직접 보고 듣고 기록하는 실무를 맡았습니다. 인접한 대청의 사헌부·사간원 관원들이 하달된 왕명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주서의 기록을 바로바로 열람할 수 있었던 데서 기인한다는 점을 파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주서는 군신 간 논의 내용을 직접 보고 듣고서 기록하였으므로 정무를 논하는 자리에 동석하였습니다. '하위직이어서 동석할 수 없었다'는 지문과 반대입니다.
②지문은 승정원이 소수의 고위직·다수의 하위직으로 구성된 여타 관서와 '구별된다'고만 했을 뿐, 양반 관원의 수가 다른 관서보다 많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③당후는 주서, 우사는 사관의 업무 공간이며 사초를 작성·관리하는 곳은 사선각·기거주실·곽방입니다. '승지 외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는 근거도 없습니다.
④대청의 사헌부 관원들은 인접한 공간에 있는 주서의 기록, 즉 군신 간 논의 내용의 기록을 바로바로 열람할 수 있었다고 하였으므로 지문으로 확인됩니다.
⑤승정원은 부당한 왕명의 출납을 거부하는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으므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할 수 없었다는 설명은 틀립니다.

정답이성계가 북상해 위화도에 도착한 뒤 5월 13일 왜구가 남부에 침입하였습니다.
핵심 개념
위화도 회군의 전개 과정
이 글은 우왕 대 명의 철령위 설치 통보를 계기로 최영이 요동 정벌을 추진하고,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최영을 제거하는 과정을 서술한 사건 서술형 지문입니다. 조정은 사신을 보내 철령위 중단을 요청하기로 결정했으나 최영은 은밀히 요동 공격을 논의했고, 이성계는 북상 후 위화도에서 회군하였습니다. 인물별 행위와 시간 순서(북상 → 왜구 침입 → 회군 → 개경 전투)를 정확히 짚어 선지의 세부 사실과 대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선지별 해설
①최영이 논의하고 출정을 명한 것은 '요동 정벌'이며 정벌군은 이성계·조민수가 이끌었습니다. 최영이 철령위 공격에 직접 출정했다는 내용은 없습니다.
②이성계가 요동 정벌군을 이끌고 북상해 5월 7일 위화도에 도착한 뒤, 5월 13일에 왜구가 남부 지역에 침입하였으므로 순서가 부합합니다.
③조정의 최종 결정은 사신을 보내 철령위 설치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중단을 요청하는 것이었지, 군사적 해결이 아니었습니다.
④홍무제가 이성계의 최영 제거 명분을 확보해 주기 위해 철령위를 통보했다는 내용은 지문 어디에도 없는 비약입니다.
⑤선의문을 공격한 것은 조민수이고 류만수는 동문인 숭인문을 공격했습니다. 동북면에 미리 대기시킨 것은 이성계의 부하 장수들입니다.